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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16.

과거 로그 -달빛을 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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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높게 떠 있는 새벽의 분위기는 저도 모르게 예전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라도 가진 걸까. 담영은 달빛이 만든 나무 그늘아래 숨듯 쪼그려 앉아 가만히 생각했다. 아직은 공기 중에 한기가 남아있는 이 시간이 오면, 항상 이렇게 다양한 온도를 가진 생각들이 뇌 내를 거치지 않고 터져 나오곤 한다. 

 

 

나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그에 답하는 답들, 아직은 적응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과 감각들이 주는 신비함, 수호신이라는 자리의 의미와 의무들에 대한 궁금증. 스스로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들과 해답을 줄 주변인의 부재로 인한 난제들이 이리저리 덩굴처럼 얽혀 저를 둘러싸 버리는 것이다. 수호신이라는 자리를 맡은 지 어언 50년, 나라는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은 100년. 인간들의 기준으로는 강산이 열 번은 변할 시간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막막하고 어딘가 묶여버린 기분은 변하지 않는다. 저는 본래 나무였으니 운신의 자유로 따지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지금이 훨씬 자유로워야 할 텐데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스쳐 보내다 보면 의식은 도저히 답을 알 수 없어 꽁꽁 묶어 숨겨두었던 질문들을 어디선가 꺼내 와 내게 들이민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 그때부턴 다시 해가 고갤 들 때까지 도저히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어버린다. 역시, 그렇지 않은가? 잘난 거라곤 다른 나무들보다 크다는 것, 마을 외곽의 숲이 아닌 공터 한 가운데에 뿌리를 내린 것이 다인 그저 평범한 나무 한 그루였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아닌 다른 나무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지금의 저처럼 크게 성장했다면, 사람들은 그 나무에게 빌었을 것이다. 나무님- 저희 마을을 지켜주세요- 하며 작은 선물들을 두고 갔겠지. 정성이 담긴 음식들, 작은 아이가 힘겹게 찾아낸 네잎짜리 클로버 같은 것들. 내가 나라서 받은 호의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도 지금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에게 지금의 나는 모두를 지켜줄 수호신, 마을을 굳게 지탱하는 수호목이겠지만 나는 그저 조금 큰 나무일 뿐이었단 말이다. 그런 큰 짐을 한순간 지게 된 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물론 처음 시작은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이런 사랑을 베풀어주고, 나를 아껴주는 마을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그저 따뜻하게만 느껴졌으니까. 배부른 소리겠지만, 나는 그리 완벽하고도 완전한 존재는 아니기에 우울하고 불안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내 자신에게 수호신이라는 역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아닐까. 이 마을 안에 사람들이 전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움직일 수 없었을 때의 바람을, 꼳꼳히 굳어있는 내 가지를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움직이게 되었던 그 순간의 환희를 잊은 것은 아니다. 단지, 정말 아주 잠시 방황할 뿐이다. 내가 수호신이 된 것이 처음인 것처럼 마을 사람들도 마을의 수호신을 얻게 된 것이 처음일 테니까. 그들도 그들만의 고민이 있겠지. 가령 우리 수호신님은 왜 이리 자주 넘어지시는 걸까- 같은 것들? 

 

 

이렇게 주저앉아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답은 아니더라도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신이라 해서 완벽할 순 없고, 누구나 처음은 있는 것일 테니. 방금까지도 불평불만만 늘어놓은 내가 스스로 하기엔 제법 웃기지만, 그냥 어느 순간 이 마을을,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나는 사랑하게 되었기에. 이렇게 청승맞게 밤바람을 맞으며 이것저것 고민하지만 언제나 다시금 해가 뜨면,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모습에 걸맞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어버린다. 이런 고민의 해답을 언제쯤 알게 될지 어쩌면 끝까지 안고 가야 할 문제일지는 모르지만 일단 얼마간은 이런 달밤의 산책은 계속되지 않을까. 달님께 보여드리기엔 너무 이기적인 생각들도 가득해 숨어버리는 모습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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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수호신이 된 지 50년쯤 되었을 때의 담영이는 하루하루가 고민의 연속이었을 것 같아요. 무언갈 알려줄 주변인도 없고, 사람으로 따지면 사춘기같이 심란한 시기이지 않았을지... 싶어서 써보았습니다. 담영이 캐해석 할 자료가 없으시다기에 급 과거 이야기 들고 오는 앤오 어때요? 문맥 이상하거나 해도 걍 모른 척 해주시기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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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2
(티엠아이. 풀어보자면 얘는 본래 나무였으니 달보단 해가 더 달가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해는 따뜻한 이미지를 가졌지만, 일반적으로 달은 해보다 차가운 이미지니까요. 어린, 제 지위에 맞지 않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모습을 달빛 아래 그대로 내보이기엔 어딘가 부끄럽다고 느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의 그늘 아래로 숨어 버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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